2019 세미나인 타이페이 방문기

저는 대만인입니다. 저는 젊고, 대만이라는 국가도 젊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민주주의는 더 젊습니다. 저는 대만의 민주주의체제아래 자라왔습니다. 대만의 민주주의는 극심한 갈등을 거치며 시민들의 노력으로 발전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대만정부는 투명한 민주주의적 과정을 거치지 않고 중국과 양안서비스무역협정을 맺었습니다. 이 협정은 수백만 시민들의 일자리기회와 일상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대만은 현재 역사적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하 중략)”

“I’m a Taiwanese ” Young Generation Guarding Taiwan Democracy
Occupy Legislature

2014년, 대만정부의 부당하고 불투명한 결정에 맞서 한 어린 학생이 전 세계 시민들의 지지를 요구하며 선언한 낭독문이다. 이는 우리에게 태양화 학생운동(太陽花 學生運動), 일명 318학생운동, 국회점령 사건으로 기억된다. 젊은 아티스트들이 몇 년간의 협업을 통해 제작하여 타이페이아트페스티벌이 선보인 공연, <Island Bar: Sweet Potato Affairs>에서는 대만아티스트와 대만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스토리텔링을 하며 그에 맞는 칵테일을 주조하여 관객들에게 나눠주는 공연인데, 노래방기계에 재생된 島嶼天光(도서천광)이라는 노래를 배우와 관객들이 함께 합창하며 2014년 그날의 사건을 기억했다. 관객 중 일부는 정치적 공격성에 공연장을 박차고 나섰으며 일부는 눈물을 참으면서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젊음과 세련됨으로 가득할 것 같았던 타이페이아트페스티벌 Taipei Arts Festival은 대만의 역사와 정체성에 대한 긴 강의로 시작되었고 그들의 역사를 이해하지 않고는 스위스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한 ‘대만공연예술리서치: 세미나인 타이페이‘에 참가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대만은 예술가에 의해 재해석되는 역사와 사회, 정치에 대한 동시대적 사상들을 중요시하고 있었으며 세미나인 타이페이를 통해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대륙에서 참가한 열두 명의 아티스트들에게 이를 전파했다. 참가하는 2주 내 유일하게 비예술인이자 한국출신 참가자로서 열정과 위협을 동시에 느끼는 시간이었다.

타이페이 아트페스티벌 트레일러

“나는 당신에게 속(하지 않는다)한다 I (do not) Belong To You”, 예술작품을 통해 정체성을 논하다. 타이페이아트페스티벌

‘사회적 테마’를 축제주제로 기획하는 건 아시아 축제들의 일시적인 경향일까? 아니면 예술이 동시대를 반영하는 현상일까? 세계적 공연단들을 비싼 값에 초대하며 지역 예술가들에게 예술적 계몽을 주로 이끌어왔던 아시아의 대표적인 국제공연예술축제들이 90년대에 시작되어 비슷한 시기에 20주년을 맞이했고 몇 되지 않는 아시아의 대표공연예술축제들이 우연치 않게 비슷한 변화를 이끌고 있었다. 2018년 서울세계무용축제는 ‘난민’을 테마로 축제를 개최하여 관심을 이끌었으며 타이페이아트페스티벌 역시 2018년 20주년을 맞이하여 ‘Assembly: Because of __ We are together (집회: ___ 때문에 우리는 함께 한다.) ’의 슬로건으로 지난해 축제를 올린 바 있으며 올해의 슬로건은 ‘I (do not) Belong To You (나는 당신에게 속(하지 않는다)한다)’로 정체성을 주제로 작품들을 선보였다. 이 주제의 부제로는 ‘Towards the South (남으로 가다)’ 라는 방향성을 제시 했는데 이는 대만의 외교적인 전략이 잘 드러나는 듯한 주제로 중국과 홍콩사이에서 국가적인 정체성을 가지지 못했던 대만이 국가적으로 남아시아의 이민자들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추세를 잘 드러내고 있으며, 대만인이 된 남아시아인, 대만의 원주민, 외국인노동자 그리고 대만 대다수의 인구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족(중국인)이 함께 대만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사회적 성향을 반영했다. 게다가 대만문화부가 주최하는 행사인 타이페이아트페스티벌에 싱가포르출신의 탕푸쿠옌 (Tang Fu Kuen)이 예술감독으로서 축제를 이끈다는 사실도 매우 흥미롭다. 프로그램은 진보적으로 사회적 트렌트를 가진 국내외 작품들이 메인 라인업으로 공개되었으며 한국에서는 안은미컴퍼니의 <북한춤>, 정금형의 <유압진동기>를 선보였고, 제롬벨(Jérôme Bel)과 지역아티스트 진무강(陳武康 Chen Wukang), 엽명화(葉名樺 Ye Minghua)의 합작 <Non-Jumping>, 필리핀 안무가 아이사 족슨 (Eisa Jocson)의 <Princess> 등을 소개했다. 그 외에 쇼케이스형태의 신진안무가를 소개하는 ‘Think Bar’프로그램은 중국, 홍콩, 대만출신 5명의 아티스트에게 2주의 레지던시 기간을 준 뒤 작품을 선보이는 프로그램으로 3팀으로 나누어 신작을 선보여 대만예술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스위스, 일본, 중국, 대만,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대표 참가자들과 타이페이아트페스티벌 예술감독 Tang Fukuen(아래 가운데), 세미나 코디네이터 Esther Lu(위 왼쪽에서 다섯번 째)
세미나 Discussion Program

또 동 기간에는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젊은 아티스트레지던스 프로그램인 ADAM(Asia Discovers Asia Meeting for Contemporary Peformance)이 열렸는데 열 두명의 국제아티스트들이 타이페이에 한 달간 머물며 지역사회를 반영하고 지역주민들과 협력하는 프로그램이다. ADAM의 마지막 주에는 전 세계의 축제 및 예술기관 인사들이 방문했고 한 달간 레지던시 아티스트들이 이루어낸 결과물을 함께 이야기하고 평가하는 자리를 가진다.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외국에서 온 국제아티스트들이 지역주민과 소통을 하는 데엔 많은 어려움과 한계점이 있지만 참가하는 젊은 예술가들에게는 다음 단계로서의 도약을 위한 발판이 되는 듯 했다. 또 아티스트들이 큐레이터가 되어 동료들을 소개하는 재미있는 구성으로 전문성보다는 새로운 시도에 중점을 맞춘 프로그램이었다 (한국참가자로는 2018년 1회에 예술가 정세영이 참가한 바 있으며 올 해는 연극예술가 송이원이 참가했다). 마침 태풍과 지진이 대만을 지나갔고, 홍콩의 시위사태가 한창인 8월, 세미나참가자들은 사회적, 환경적 배경에 따라 변모하고 있는 아시아의 예술축제를 목격할 수 있었다. 타이페이아트페스티벌은 국제적 명성보다는 지역사회와의 연계성, 신진예술가의 레퍼토리개발, 참신함 등에 더욱 포커스를 맞춘 듯 했고, 이는 축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다만 오히려 개방적인 주제가 예술가들을 제한하고 있지 않은지는 고심해 볼 만하다.

ADAM_TimeOutAsia 컨퍼런스

상처 깊은 언더그라운드 아트신 vs. 국가적인 도약, 융합문화예술센터 C-LAB

 한국계 독일철학자인 한병철교수는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질병이 있다고 하였고, 현대사회를 ‘피로사회’라 칭하였다. 끝없이 민족간의 갈등을 겪어 온 대만에서는 어느 민족보다도 정체성의 위기를 겪어온 원주민의 역사를 매우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드라마투르기 베티 진(陳佾均 Betty Yichun Chen)은 타이페이아트페스티벌의 드라마투르기로서, 그리고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만공연예술계에서 점점 강조되고 있는 드라마투르기로서 왕성히 활동 중이다. 그녀는 세미나에서 대만의 원주민 안무가인 판거스 나야 (陳彥斌 Fangas Nayaw)와 함께 작업하여 국립타이페이사범대학 박물관 (MoNTUE, Museum of National Taipei University of Education)에서 초연한 <Masingkiay>라는 공연에 대해 소개했다.

판거스 나야 (陳彥斌 Fangas Nayaw)의 작품 <Masingkiay>

이 프로젝트는 박물관에서 관람객들과 원주민 아티스트들이 밤을 새며 함께 원주민의 방식으로 파티를 열고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공연이다. 공연을 방문하는 관람객은 방문자의 입장으로, 원주민아티스트는 호스트의 입장으로 현대사회에서 뒤바뀌어 버린 호스트(역사적으로는 침략자였으나 현재는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족)와 방문자(탄압되어버린 원주민)간의 사회적인 입장을 바꿔버린다. 관객을 모욕하지 않는 형태로 역사와 현재를 돌이켜보게끔 하는 서사적이고 대담한 공연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세미나 프로그램 중 많은 스피커들이 이 공연에 대해 언급했다. 2019년에는 이어서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에 초청되어 유럽초연을 열기도 했다. 세미나기간 중에는 공연예술뿐 아니라 노이즈사운드예술가, 다큐멘터리 감독, 시각예술가 등을 만나는 기회도 있었는데,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은 그들이 힘겹게 쌓아온 대만 예술계의 아픈 역사에 대해 잘 기억하고 있었으며 이를 이겨낸 대만이라는 국가에 대해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고 이를 예술로 승화하여 끝없는 사회적, 외교적 위기에도 좌절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반해 대만은 막대한 국가예산을 들여 문화예술기관의 시설보수를 하고 있다. 2018년에 개관하여 1,981석의 콘서트홀과 2,236석의 오페라하우스를 가지고 있는 대만가오슝국립극장은 거대한 규모의 건축물로 전 세계의 이목을 이끈 바 있다.

대만 가오슝국립극장의 전경

“2020년에 준공완료될 타이페이공연예술센터는 네델란드 건축가 렘 쿨하스(Rem Koolhaas)가 디자인하였고 타이페이 도심 한복판에서 현재 시공 중이며 이미 오랜 역사를 가진 타이페이국립극장과는 차별된 현대예술작품들을 선보이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타이페이공연예술센터 전경

2018년에 개관한 C-LAB(Taiwan Contemporary Culture Lab)도 마찬가지이다. 일제강점기 공군기지를 문화시설로 재건하여 대규모의 건물들이 아직은 빈 상태로 사업을 가동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이곳은 대만문화부와 대만생활예술재단이 세운 곳으로 ‘문화혁신’, ‘문화예술적 실험과 사회혁신’을 위한 생태계를 만들고, 시민들에게 문화적인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이 그들의 미션이다. C-LAB의 시니어컨설턴트 공탁군(龔卓軍 Gong Jow Jiun)은 이곳이 과학과 예술의 실험그라운드가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으며 한국에서도 적극적으로 촉진되고 있는 과학과 예술의 융복합 예술장르를 선보일 것이라고 했다. 특히 대만 내 모든 공연예술극장들의 사운드시스템을 개선할 예정으로 세운 사운드랩은 NASA가 상상될 만큼 거대하고 비싼 장비들로 꽉 차 있었고, 설화 속 괴물을 주제로 한 C-LAB의 전시장은 최첨단 VR과 3D체험들로 가득하여 관람객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대만의 현지 아티스트들의 반응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그들은 최첨단 장비나 대규모의 극장보다는 투명한 경영과 잦은 기회를 원하고 있다.  

C-LAB 소개영상
C-LAB의 서라운드사운드와 VR시스템 개발중인 랩
C-LAB의 전시장 <요괴도시>

아직은 초기 단계이지만 아시아국가 중에서도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는 대만예술계의 움직임이 또 다른 기회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 동아시아가 90년대에 재정적으로 안정된 선진국들과의 교류를 선도했다면 이제는 아시아국가간의 교류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의 예술계는 지리적 근접성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경제적, 언어적 차이에 따라 교류에 어려움이 많은 편이었지만 경제적인 경쟁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시점이다. 굳이 아시아의 아티스트들을 선발하여 아시아국에서 세미나를 연 스위스문화예술위원회의 의중도 빠르게 성장하는 아시아를 연구하고자 함이 아닐까 예상된다. 이번 세미나에 이어 아시아국가 간 예술가의 상호적인 파견뿐 아니라 전문가들의 교류와 파견도 적극 추진하여 부족한 정보를 채우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단계로 넘어갈 수 있길 바란다.

글_ 장수혜

스위스문화예술위원회Swiss Pro Helvetia 주최, 예술경영지원센터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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